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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디지털화폐(数字货币) 추진현황 및 전망 & 철중쟁쟁(鐵中錚錚)

아판티(阿凡提) 2020. 5. 26. 21:05

중국인민은행은 2014년 이후 디지털화폐(数字货币, 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DCEP)연구에 착수하여 2017년 디지털화폐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디지털화폐 발행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음.

 

지난해 말부터는 디지털화폐의 결제 및 유통 기능 테스트(2019.12~2020.5월)를 일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현지에서는 일반인 대상 시범 발행도 임박한 것으로 보도.

 

디지털 위안화는 물리적 이동 제한이 있는 지폐와 달리 중국 외에서도 쉽게 활용이 가능하므로 위안화 국제화에도 철중쟁쟁(鐵中錚錚: 많은 쇠 가운데서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란 뜻으로, 보통 사람 중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어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한국은행>에서 발표해 주었다.

 

 

후한(後漢)의 시조 광무제(光武帝)가 서선(徐宣)을 평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다음은 《후한서(後漢書)》 〈유분자전(劉盆子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광무제는 후한의 초대 황제로 이름은 유수(劉秀)이며,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9세손이다. 그는 황제위에 올랐으나 적미(赤眉)를 비롯하여 왕망 때부터의 유적(流賊)들이 날뛰고 있어서 옥좌에 편히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광무제는 먼저 적미를 토벌하기로 했다. 적미는 유분자(劉盆子)를 황제로 추대하고 있었는데, 광무제는 등우(鄧禹)와 풍이(馮異)를 보냈으나 전세가 불리해져 그가 몸소 출진하여 가까스로 항복을 받아냈다. 광무제는 항복한 적미의 잔병 10여 만이 뤄양[洛陽]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대장 번숭(樊崇)이 유분자와 함께 웃통을 벗어 스스로를 벌하는 모습으로 항복해왔다. 광무제는 먼저 유분자에게 죄를 묻자, 유분자는 ‘만 번 죽어 마땅하나 제발 살려달라’고 했다. 이어 번숭에게 ‘아군의 실정을 보고 항복한 것을 혹시 후회하지 않는가’를 물었다. 이때 함께 항복한 그들의 승상인 서선은, 숭이 대답하기도 전에 머리를 땅에 내리치면서 “천만의 말씀입니다. 호구를 벗어나 자모의 품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광무제는 다소 비웃듯이 “경은 철중쟁쟁(鐵中錚錚), 용중교교(庸中佼佼)한 자로군.”이라고 쌀쌀하게 말했다.

여기서 ‘철중쟁쟁’은 ‘용중교교’와 함께 대응을 이루어 ‘보통 사람 중에서 조금 나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용중교교’란 ‘범인(凡人) 중에서 좀 나은 자’라는 뜻으로 ‘철중쟁쟁’과 함께 그만그만한 자 중에서 조금 나은 자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광무제는 통찰력이 있는 인재라면 시세의 추이를 보고 벌써 귀순했을 것이고, 대세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면 아직도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고 있을 것이므로, 서선이 항복한 시기가 결코 이른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항복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어리석은 자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 낫다고 본 것이다.

2020.5.27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 추진 현황 및 전망(200515, 한국은행).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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