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연전연패(連戰連敗)일까, 아니면 연패연전(連敗連戰)일까?

아판티(阿凡提) 2013. 8. 12. 05:20

중국어의 뿌리가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8차전 이란과의 경기

 

지난 7월18일 한국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을 통과했다. 모두 8차례,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는 데서 우리는 겨우 위안을 얻었다. 그 날 최종 예선 경기에서 숙적인 이란에게 홈그라운드 경기임에도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결국 0대1로 패했기 때문이다.

 

이란 앞에 나서면 작아지는 한국 축구라는 말이 나온다. 종합 전적에서는 다소 뒤지지만, 최근 경기에서는 이란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다. 싸움에 나서 계속 패배하는 게 연전연패(連戰連敗)다. 이런 전투를 이끄는 장수는 졸장(拙將)일 테고, 그 밑에서 싸움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약졸(弱卒)이다.

 

중국 청나라에 강력한 장수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이 증국번(曾國藩)이다. 그는 원래 문인 출신의 관료였다. 그러나 태평천국(太平天國)이라는 반란이 도지자 혜성처럼 나타나 후난(湖南) 일대의 군사력을 모아 그를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 밑에 문인 출신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싸움에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깨지고 돌아왔다. 말 그대로 ‘연전연패’의 장수였다. 아울러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하는 ‘백전필패(百戰必敗)’의 무능력한 지휘관이었다. 증국번은 조정에 이 사람을 파면하는 보고서를 올릴 생각이었다.

 

‘싸움에만 나서면 반드시 진다’는 내용을 ‘屢戰屢敗(누전누패)’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렇게 적어 조정에 올리면 아무래도 내리는 벌이 너무 혹심하리라고 생각한 관료 하나가 글자의 순서를 슬쩍 바꿨다. ‘屢敗屢戰(누패누전)’-. 패할 패, 싸울 전이라는 두 글자의 순서만 바꿨는데 의미는 180도로 전환했다. ‘거듭(屢) 싸움에서 지는데도(敗), 계속(屢) 나가서 싸운다(戰)’는 뜻으로 말이다.

 

조정은 그런 수사(修辭)의 기교에 속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아’하고 ‘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참하게 깨지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용기 있게 싸운다는데, 그런 장수에게 어찌 가혹한 벌을 내릴 수 있을까. 그래서 그 무능한 장수는 위기를 모면했다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겠다. 싸우면 지기만 하는 장수가 그런 자리에 오래 남았을 것이고, 그런 군대를 지닌 청나라는 결국 내부적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테니 말이다.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란 전에서 졸전(拙戰) 끝에 치욕스런 패배를 당한 한국의 축구는 어디에 해당할까. 중국의 에피소드는 우리 식으로 쓰자면 ‘연전연패’이거나, ‘연패연전’이다. 팩트로 따지자면 ‘연전연패’가 분명하다. 게다가 국가대표팀이 경기 때 보여준 여러 허점과 부실함은 국민들 뇌리 속에 강력하게 남아 있다.

 

행여 그를 ‘연패연전’이라면서 가볍게 넘어갈 생각일랑은 말자.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 그것 고치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내일은 암울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축구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많은 모습이 실제로는 망가지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연패연전’식 레토릭의 주술(呪術)과 마장(魔障)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이켜 볼 일이다.

 

2013.8.12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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