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0.밀(密)과 통(通)에 대하여

아판티(阿凡提) 2013. 8. 16. 05:10

중국어의 뿌리가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6월25일자 중앙일보 29면(오피니언)에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쓴 칼럼이 실렸다. ‘박근혜와 시진핑의 밀통적신(密通積信)’이라는 제목이다. 중국인들이 보이는 습성, 또는 행위 상의 특성이 ‘밀통적신’이며, 이를 잘 이해해야 중국과 상호불신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는 게 글의 취지다.

 

취지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다. 단지 중국식 성어라고 필자가 소개한 ‘밀통적신’의 ‘밀통’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는 데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자는 생각이 든다. 정덕구 전 장관은 이를 ‘은밀히 통하다’로 쓰고 있다. 꼭 그렇지는 않은데, 그렇게 해석한 이유는 뭘까.

 

‘密’이라는 글자는 산중의 숨어 있는 곳, 몰래 감추는 곳이라는 원래의 뜻에서 ‘빽빽하다’ ‘조밀(稠密)하다’의 뜻을 거쳐 ‘가깝다’, ‘은밀하다’의 뜻 등을 얻는다. ‘密通’에 ‘믿음을 쌓다’는 뜻의 ‘積信’을 붙인 이 말은 사실 족보가 뚜렷하지 않다. 그런 성어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밀통’이라는 단어의 어원조차도 분명치가 않다. 따라서 성어 식 단어 구성이지, 그 자체가 성어라고 볼 수는 없다. 아울러 현대 중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밀통’을 굳이 해석해 보자면, ‘은밀히 통한다’ ‘자주 (소)통한다’의 둘이다. 우리는 이 둘 중에서 어떤 쪽을 고르는 게 옳을까. 은밀히 통해야 서로 믿음을 쌓을 수 있다? 뭔가 번지가 틀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뒤의 것이 더 낫다. ‘자주 소통해야 믿음이 생긴다’. 훨씬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아울러 ‘通’이라는 글자는 어느 경우에는 쓰임새가 불량할 때가 있다. 통정(通情), 통간(通姦)의 단어 예에서 보듯이 남녀사이의 불륜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중국인이 한중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말을 전한 것이라면, ‘빈번한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내용이리라. 그러나 정 전 장관은 ‘은밀함’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런 ‘은밀함’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通’이라는 글자와 만나면 아주 이상한 화학적 결합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의 ‘密’을 달리 해석하는 게 옳다. ‘자주’ ‘빈번히’라는 부사적 용법이다.

 

그 ‘密’이 눈물겹게, 그리고 거룩하게 쓰인 시가 있어서 여기에 옮긴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이다. ‘유자(遊子)’는 길을 떠나는 아들, 또는 흔히 우리가 쓰는 ‘탕자(蕩子)’ ‘탕아(蕩兒)’다. 그 아들이 길을 떠날 때의 정경이다.

 

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자애로운 어머니 손에는 실,
떠나는 아들 몸에 걸친 옷.

길을 나설 때 촘촘히 꿰맵니다, 늦게 돌아올까 걱정하면서…

누가 말했나, 풀잎 같은 마음이 봄날 햇볕의 큰 은덕을 갚는다고.

 

 

은밀함만을 사랑하지 말자. 한자 ‘密’에는 그 말고도 빽빽함, 촘촘함, 자주, 빈번히 등의 뜻도 있다. 맹교의 ‘유자음’에는 그 촘촘하게 바늘땀을 놓는 어머니의 정성과 거룩함이 들어 있다.

 

 

새로운 한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정성으로, 견고한 노력으로 중국을 설득해 한반도 평화안정의 기반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작은 길, 소로(小路)로 우회하는 은밀함도 때론 필요하지만 큰 길에 떳떳하게 나서 광명정대(光明正大)함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중국과의 새로운 동북아 시대 창출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최소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2013.8.16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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