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의 뿌리가 곧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잘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식’의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를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중국에 반국(飯局)이라는 말이 있다. 밥 또는 식사를 뜻하는 반(飯)이라는 글자 뒤에 게임이라는 뜻의 국(局)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굳이 번역하자면 ‘밥자리 싸움’ ‘밥자리 게임’이다.
밥 또는 식사와 게임을 연결시킨 문화는 아마 중국이 최고의 수준일 테다. 일찍이 진시황(秦始皇)이 사망한 뒤 천하의 패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막바지 경합에서 상대의 목숨을 빼앗고자 했던 곳이 밥자리, 즉 ‘홍문에서의 파티(鴻門宴)’였다.
매실이 익는 계절에 조조(曹操)가 힘 잃은 유비(劉備)를 불러다가 “천하의 대권을 쥘 영웅이 누구냐”며 그 속을 떠보려던 곳 또한 밥자리였다. 북송(北宋)을 건국한 조광윤(趙匡胤)이 대신들의 병권(兵權)을 모두 회수한 곳 또한 파티 자리였다. 조조와 유비는 ‘빛을 감추고 자신의 실력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성어를 생산했고, 조광윤의 그 일화는 ‘한 잔 술로 병권을 모두 빼앗는다’는 뜻의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의 성어를 낳았다.
‘局’이라는 글자가 왜 게임이냐는 물음이 나올 법하다. 대국(對局)이라는 단어 생각해 보시면 금방 알 수 있다. 국면(局面)은 그런 게임의 상황이다. 기국(碁局), 포국(布局), 국세(局勢)…. 이 단어의 나열을 보면 적어도 이 글자가 게임, 나아가서는 다툼과 싸움, 그리고 전쟁의 뜻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밥자리와 그 게임, 나아가 전쟁의 의미까지 담은 ‘局’을 치밀하게 얽은 문화는 중국이 최고다. 그런 중국이니까 전쟁의 방략(方略), 그러니까 전략(戰略)이 발달할 수밖에 없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전략은 나중의 단어 조립이고, 모략(謀略)과 책략(策略), 병략(兵略)이 원래의 조립이리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성과가 대단하다고 야단법석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추론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흥분만 하고 있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다. 상대가 밥과 게임을 일찌감치 얽은 모략과 병략, 책략의 완성자인 중국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어느덧 국가의 대사(大事)를 앞에 놓고 중국인과의 ‘반국’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란(戰亂)의 핏빛 풍우(風雨)를 뚫고 성장한 중국이다. 더구나 모략의 문화적 주체로서 그 방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중국이다.
따라서 친근함, 다정함, 반가움, 의전의 풍성함과 정중함 등의 감성적 언어로 중국을 보고 있을 때만은 아니다. 중국과의 본격적인 머리싸움에 들어섰다는 점도 분명히 인지해야 옳다. 냉정하게 국익을 다투고, 그에 중국이 의기투합하는 쪽으로 이끌어야 한다. 중국 이상의 방략과 책략이 필요할 때다. 물리적인 다툼은 아니니까, 병략은 생략하자는 말도 하지 말자. 중국은 선례후병(先禮後兵)이라는 성어도 ‘보유’한 나라다. 먼저 예의를 차리다가, 상대가 만만찮으면 물리적인 힘으로 다스리라는 뜻이다.
‘긴 소매 옷을 입어야 춤도 잘 춘다’는 성어는 어떨까. ‘長袖善舞’라고 적는다. 협상에서 뚜렷하게 우위(優位)를 점할 수 있는 조건을 챙겨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러 조건을 자신에게 늘 유리하도록 조정해야 협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성어가 즐비한 중국과 이제 우리는 함께 식탁에 앉은 상황이다. 무엇을 새기고, 무엇을 가다듬어야 할지 우리 스스로 답을 잘 챙겨야 한다.
2013.8.19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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