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2.용퇴(勇退)

아판티(阿凡提) 2013. 8. 21. 05:12

중국어의 뿌리가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구천(勾踐)을 도와 오()를 꺾는 데 성공한 사람의 하나가 범려(范蠡 BC536~BC448 추정). 그는 중국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 중에서도 지혜가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월나라 왕 구천과 함께 오나라를 제압했을 때 보인 행동이 이채롭다.

 

그는 숨어 지내는 길을 택했다. 오나라를 무찌르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따라서 일등공신의 자리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사랑한 여인 서시(西施)와 함께 강호(江湖)로 숨어들어 이름을 바꾼 뒤 상인으로서 거대한 부를 쌓았다.

 

그는 구천의 사람됨을 믿지 못했다.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겪을 수는 있으나 성공을 거둔 뒤에 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달콤한 유혹을 모두 끊고 강호에 몸을 맡긴다. 그런 그의 행동을 두고 중국인들은 거센 물길에서 용감하게 물러난다는 뜻의 급류용퇴(急流勇退 혹은 激流勇退)’라는 표현을 쓴다.

 

그냥 물러나면 물러나는 것인데, 왜 하필이면 용기라는 의미의 ()’을 붙였을까. 그 용의 본질은 과단(果斷)’에 있다. 이 과단이 무엇인가. 열매를 뜻하는 와 단호히 끊는다는 뜻의 이 붙었다. 앞의 열매’ ‘과실의 새김에서 발전해 단단하게 맺어진 상태의 의미까지 얻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果斷과감하게 끊어 버린다의 뜻이다.

 

사실 물러나는 일이 더 어렵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감성체인 사람은 그로부터 다시 번지는 수많은 욕망에 눈이 쉽게 어두워진다. 따라서 그런 욕망을 끊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물러남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굳이 勇退라고 적었을 테다.

 

나아가고 물러남은 모두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때를 맞추지 못하면 실패한다.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이름은 이름대로 무너진다. 이를 중국에서는 身敗名裂(신패명렬)’이라고 적는다. 늑대가 웅크렸던 자리처럼 이름이 볼썽사납게 망가진다는 뜻에서 聲名狼藉(성명낭자)’라고 표현키도 하며, 냄새나는 이름이 멀리 퍼진다고 해서 臭名遠揚(취명원양)’이라고도 적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이 화제다. 기업 등으로부터 거둔 돈이 많을 것이라고 해서 매긴 추징금이 2000억 원 이상이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이를 끝까지 내지 않고 버티다가 급기야 가택 등을 수색 당했다. 자신에게 밀려오는 급류를 보면서 깨끗하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이 몰고 온 정국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권력을 잡은, 나름대로 의 을 펼친 인물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그 담력은 어찌 보면 작은 용기, 소용(小勇)’이리라. 국가의 전직 원수로서 자신과 가족, 나아가 국가의 명예까지 생각해 과거의 허물을 터는 큰 용기, ‘대용(大勇)’은 그에게 없었던 모양이다.

 

2013.8.21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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