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3.초(草)

아판티(阿凡提) 2013. 8. 23. 05:23

중국어의 뿌리가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 서고의 옛 모습

 

당(唐)나라 때의 스타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풀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 있다. 그가 젊었을 적 과거를 보러 수도 장안에 들렀을 때 이름 높은 한 시인에게 자신의 시재(詩才)를 선보이기 위해 건넨 작품이었다. 그 앞부분은 이렇다.

 

離離原上草,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春風吹又生。

 

번역하자면 이렇다.

 

들판 가득 자란 풀, 세월 따라 자랐다가 사라지지.

벌판을 휩쓰는 불도 그를 없애지 못하지, 봄바람 불면 또 자라날 테니.

한국의 시인 김수영도 같은 감회를 지니고 있다. 그가 1968년에 발표한 시 ‘풀’은 앞 내용은 이렇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시인의 시야에 들어오는 풀은 그렇게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강하다. 들판을 모두 태우는 불, 요원지화(爎原之火)의 맹렬함에 풀은 먼저 사라지지만 이듬해 봄이면 그 따사로움을 좇아 가장 먼저 생명의 시작을 알린다. 한국 시인 김수영의 작품에서도 그 이미지는 거의 비슷하게 등장한다. 풀의 이미지는 그렇듯 이중적이다. 변변치 않아 보이는 모습 속에 숨어 있는 강력한 생명력, 굳이 다듬자면 ‘시원(始原)의 지평’이다.

 

그래서 풀을 뜻하는 한자 ‘草(초)’는 사물의 근원이자 시작이라는 의미와 함께 변변치 않은 것, 정교함을 결여한 엉터리 상태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모두 지닌다. 막 걸음마를 뗀 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단계가 ‘초창(草創)’이다. 문장을 쓸 때 먼저 만든 그 바탕을 초고(草稿)라고 부르고, 계획의 토대로 만든 것을 초안(草案)이라고 적는다. 사료(史料)의 처음 원고를 사초(史草)라고 적는 이유다.

 

변변찮고 하찮은 의미로 적는 단어도 많다. 정교하게 다듬지 않는 일을 초략(草略), 진중하지 못하게 일을 대충 마무리하면 초솔(草率)로 적는다. 붓글씨 서체 중 흘림체로 적은 것을 초서(草書)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린다’의 ‘초개’도 같은 의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대화록 중 청와대가 보유했다는 원본이 없어졌다. 대한민국의 매우 중요한 역사 자료, 즉 사초(史草)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우리는 ‘풀’이 지니는 두 가지 의미 중 ‘하찮음’에만 주목하는 모양이다.

 

역사를 제대로 적지 못하고, 세우지 못하면 나라의 근간은 망가진다. 사초를 잃음은 역사의 저본(底本)을 거리의 하찮은 풀처럼 홀대하는 경우다. 생태계의 바탕 자원인 풀의 중요성을 간과한 태도이니 그 위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들 또한 온전할까.

 

2013.8.23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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