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금융 이야기/위안화

10월1일 위안화 SDR편입, 달러와 패권다툼 신호탄 & 일모도원(日暮途遠)

아판티(阿凡提) 2016. 10. 13. 05:20

중국 위안화가 10.1일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바스켓통화에 편입되었. 이로써 위안화가 세계 기축통화를 지향하는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 미국 달러화와의 패권다툼 역시 현실로 다가왔다.

위안화의 SDR 바스켓 편입은 IMF가 위안화의 SDR 편입 심사를 시작한 지 5년 만인 지난해 1130 IMF 집행이사회가 결정했다. 이로써 위안화가 달러,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와 함께 외환보유 자산으로 공식 인정을 받는 화폐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SDR 바스켓에서 위안화의 비중은 10.92%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 나머지 4개 통화의 비중은 각각 41.73%, 30.93%, 8.33%, 8.09%로 조정됐다.

신화통신은 "위안화 SDR 편입은 중국 금융시스템의 수십 년에 걸친 개혁·개방의 결과로 국제사회가 중국의 종합국력과 경제성과를 인정해주면서 중국 금융체계에 새로운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 시작점"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위안화의 SDR 편입은 각국이 위안화 자산을 늘리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딩솽(丁爽) 스탠다드차타드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SDR 편입은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기관이 위안화 자산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앞으로 5년내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중 위안화 비율이 1%에서 5%까지 높아져 엔화, 파운드화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중국으로 3000억 달러 규모의 자본이 순유입되면서 중국의 대외적 경쟁력이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의 개방도를 대폭 높이지 않으면 국제통화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중국의 자본 개방도는 68%로 미국(294.0%)이나 일본(282.0%), 한국(123.9%) 등과 비교해 미약한 수준이다. 또한 금융시스템이 여전히 낙후돼 있고 금융시장도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자에게 안정적 수익을 제공할 위안화 금융상품이 마땅치 않다. 아직도
위안화 국제화로 가는 길은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에 비유할 수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위 자료는 아주경제 기사를 옮겨온 것이다.

 

 춘추시대의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은 소부 비무기()의 참언으로 평왕()에게 죽었다. 이에 오자서는 오()나라로 도망가 후일 복수할 것을 기약하였다. 마침내 오나라의 행인( : 외교통상부 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 된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오자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후계자 소왕()의 행방 또한 묘연해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산중으로 피한 친구 신포서()가 오자서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또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사기()》 〈오자서열전()〉의 이야기이다. ‘일모도원’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자서의 이 행위는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로 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오늘날까지 오자서가 변명한 도행역시의 그 당위성마저 인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유교적 가치관의 지배하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보인다.

 

 

2016.10.13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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