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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화이(求同化異)’의 한중 활용 지혜 & 등고자비(登高自卑)

아판티(阿凡提) 2017. 6. 1. 05:37

지도자의 말은 사실상 통치의 중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통치 행위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의 말은 지도자의 능력, 인격, 품격을 밖으로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고 그 대상과 장소에 따라 중요한 신호로 읽히기도 한다. 특히 중국과 같은 당국가체제에서는 지도자 개인의 정치 개입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주요 정책의 방향, 계획 등에 관련된 지도자의 말 한 마디는 사실상 법과 제도의 권위를 갖게 된다.

 

지난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40여 분에 걸쳐 전화 통화를 했다. 시진핑 주석은 전화에서 “중국과 한국 양국은 이웃이고 이 지역의 중요한 국가이다. 수교 25년 동안 중한관계 발전은 매우 큰 성취를 이뤘고 소중히 여길만한 가치가 있다. 쌍방은 반드시 중한 양국 수교의 첫 마음(初心)을 깊이 새기고 피차 중대한 우려와 정당한 이익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 ‘구동화이(求同化異)’를 위해 노력하고, 차이를 적절히 처리한다.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중국의 관련 중대한 우려를 중시하고, 실제 행동을 취하고, 양국 관계의 건강하고 평온한 발전을 추동할 것으로 희망한다. 중한관계의 더 좋은 발전 실현은 우리 양국 인민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고 지역의 평화 안정 발전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은 직접 ‘구동화이’를 언급했다. ‘구동화이’는 사실 2016년 9월 항저우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이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언급한데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답 차원에서 언급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이 바로 한국에서 언급한 이 말을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사실 ‘구동존이’는 중국이 즐겨쓰는 표현인 반면 ‘구동화이’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동화이’ 대신 ‘취동화이(聚同化異)’란 표현을 자주 쓴다.

 

‘구동존이’와 ‘취동화이’의 가장 큰 차이는 ‘존이(存異)’와 ‘화이(化異)’의 차이에 있다. 즉 문제의 처리방식, 그리고 그 차이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구동존이’는 사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점은 취하고 화합의 기초 위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가 같을 수는 없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취동화이’는 사실 ‘중용의 도(中庸之道)’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같음을 취하고 그 가운데서 서로의 차이를 부단히 취합하고 확대하여 결국 점진적으로 그 차이를 제거해 나가는 발전적 사고가 깊게 내재되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중국식 표현인 ‘취동화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워딩(wording)인 ‘구동화이’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차이를 극복해 나가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는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자는 우회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드 문제로 촉발된 한중관계의 갈등이 경제관계와 교류협력에 직접적이고 현저한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한중관계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전환의 모멘텀이 필요하고 사드 문제는 이런 측면에서 사유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건설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이 현 한중관계 교착 상태를 상호 정치적 신뢰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중간 정치적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의 자세를 견지하고  
‘존이’에서 ‘화이’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응대할 필요가 있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csf(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해 주었다.

 

 

 

 맹자()》 진심편()에서도 군자는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닷물을 관찰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그 움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 마치 해와 달을 관찰할 때 그 밝은 빛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은 그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그만 틈만 있어도 반드시 비추어 준다.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 놓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도 이와 같이 도에 뜻을 둘 때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

또 불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 남의 삼층 정자를 보고 샘이 나서 목수를 불러 정자를 짓게 하는데, 일층과 이층은 짓지 말고 아름다운 삼층만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좋은 업은 쌓으려 하지 않고 허황된 결과만 바란다는 이야기다. 학문이나 진리의 높은 경지를 아무리 이해한다 한들 자기가 아래서부터 시작하지 않고서는 그 경지의 참맛을 알 수 없는 것이다.

 

 

 

 

2017.6.1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구동화이의 공간 활용 지혜(170524, csf).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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