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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25주년, 무엇이 달라졌나? & 간담상조(肝膽相照)

아판티(阿凡提) 2017. 9. 21. 05:16

1992년 한·중 수교이후 25년 동안 한국과 중국 양국은 경제적으로 수출입, 투자, 관광 등 부문에서 교류가 지속 강화되었다. 2008년에 양국 관계가 외교적으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으나, 최근에는 사드문제 등 양국 간 이해관계 충돌로 한중 관계가 다소 냉각된 상황이다.

 

경제부문을 중심으로 한중 수교이후 25년 동안 양국 간의 경제교류 변화는 어떠하였는지를

① 상품무역 ② 기술무역 ③ 직접투자 ④ 산업 ⑤ 인적교류

부문에서 읽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간 경쟁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양국 간의 지리적 인접성, 경제적 호혜성, 문화적 동질성이 작용하면서 교역, 투자, 관광 등 부문에서 상호 성장을 견인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사드배치 문제로 양국 간 경제교류가 경색되고 있으나, 양국 간의 간담상조(肝膽相照: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뜻)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상호간 윈-윈 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중 양국은 균형적인 교역 및 투자 파트너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적극적인 미래기술 발굴을 통해 對중국 기술우위를 유지하되, 중국과의 전략적인 기술협력으로 산업표준을 선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셋째, 양국은 향후에도 동북아 역내 지정학적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상호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해 주었다.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당대)의 두 (명문) 대가에 [한유: 자는 退(퇴지), 768~824]와 [유종원: 자는 (자후), 773~819]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 805~820) 때 (유주 자사)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 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끝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곧 상호 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을 나타내거나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를 일컫게 되었다.

 

 

 

2017.9.21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한중 수교 25주년, 무엇이 달라졌나(170824, 현대경제연구원).pdf

 

한중 수교 25주년, 무엇이 달라졌나(170824, 현대경제연구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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