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熊&기타국 이해하기/북한

북한 보험산업의 이해와 대응 & 태산북두(泰山北斗)

아판티(阿凡提) 2018. 8. 20. 05:23

북한에서는 보험을 자연재해나 뜻 밖의 사고로 사람과 재산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자금을 조성하고 이용하는 손해보상제도로 정의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일반적으로 국가가 보험의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나 북한의 경우 인민의 생활 안정, 경제 발전에의 이용 등을 목적으로 보험제도를 운영한다.

 

따라서 북한에서의 보험은 사유재산의 보호가 아닌 국가소유 시설물들이 각종 사고로 피해를 입었을 때 복구재원을 신속히 조달하기 위한 일종의 국영 공제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성격이 강하다.

 

해외보험은 부족한 담보력의 확보보다 사고 발생 시 필요한 복구 재원의 일부를 재보험을 통해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보험회사가 외화벌이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보험업의 경우 은행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전적으로 독점적 관리 운영을 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다만, 자유경제무역지대의 경우 관련법에 따라 외국투자자와 해외조선동포, 기업 대표부, 지사, 대리점도 보험사업을 허용하고 있다. 종합하면, 북한의 경우 보험업은 태산북두(泰山北斗: 태산과 북두칠성이라는 뜻으로,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뛰어난 인물을 비유하는 말 또는 학문이나 예술 분야의 권위자나 대가를 비유)로서의 국가가 독점 운영하는 체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보험연구원>에서 발표해 주었다.

 

 

 

 한유()는 중국 당나라 때의 문학자이자 사상가로, 이백(), 두보(), 백거이()와 함께 당나라의 대표적 4대 시인의 한 사람이며, 당송팔대가()로 꼽히는 중국 제일의 문장가이다. 그는 25세 때 진사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이부상서()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를 극간하다가 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과 파직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을 지낸 뒤 57세의 나이로 죽었다.

한유는 순탄하지 못했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학문과 사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친구인 유종원 등과 고문운동을 제창하여, 고문이 송대 이후 중국 산문 문체의 표준이 되게 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지는 등 후세에 영향을 주었다. 사상 분야에서는 도교와 불교를 배격하고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여 공자 이래의 유학을 왕성하게 하는 데에 힘써 송대 이후의 도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되었다.

《당서()》 〈한유전()〉의 찬()에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의 문장으로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학설이 천하에 떨쳤으므로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처럼 우러러보았다." 여기서 '태산'은 글자상으로는 큰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악()의 하나로서 성산()으로 우러러보는 산이다. '북두'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이 모든 별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북두'라는 말 자체도 뛰어난 인물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오늘날 이 말은 '태두()', '산두()'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며, 특히 학술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2018.8.20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북한 보험산업의 이해와 대응(180726, 보험연구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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