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중국 정치

시진핑, 트럼프에 108첩 식사 대접했지만 & 관포지교(管鮑之交)

아판티(阿凡提) 2019. 5. 23. 05:20

2017년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루 동안 자금성을 통째로 빌려 행사를 진행한 것도 회자거리였지만, 건륭제의 서재였던 삼희당(三希堂)에서 비밀회담 형식으로 진행된 회담도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회자되었지만, 특히 주목받았던 것은 만찬과 관련된 화제였다. 건복궁(建福)에서 거행된 만찬에서 108가지 이상의 요리가 제공되는 만한전석(满汉全席)이 올랐기 때문이다

만한전석의 기원은 청대(淸代, 16361912)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주(滿州)의 여진족이 기원인 청나라는 1644년 드디어 명나라를 멸망시킨다. 이후 청나라의 4대 황제인 강희제(1661~1722)가 중국 전국을 통일하였으며, 276년 동안 왕조를 유지했다. 중국 최전성기를 이끈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는 태평천하를 만들기 위한 일들을 많이 하였는데, 만한전석은 강희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한전석의 최초 형태는 강희제의 회갑연(回甲)에 나온 음식이라고 한다. 회갑연 때 전국 65세 이상 노인을 2800명이나 궁궐로 초청해 이틀에 걸쳐 대대적인 연회를 개최했다. 이 연회에서 제공된 요리들은 만주족과 피지배계층인 한족의 음식이 총 망라된 요리들이었다. 이 때의 요리들이 체계화되면서, 건륭제 때 만한전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만한전석은 만주족과 한족의 음식이 하나의 상에 조화롭게 차려져 있다는 외형상 특징으로 인해 양 종족 간의 융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지배계층인 만주족과 피지배계층인 한족이라는 사회적 관계에 따른 종족 간 위상 차이를 고려할 때 과연 평등한 화합이 되었을까

물론 시진핑 국가주석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더욱 확대되어 '중국이 세계 최강국 진입을 자축하면서 섣부르게 터트린 샴페인'으로 풀이될 수 있다. 최근 '일대일로' '중국제조 2025'에 대한 반 중국 정서가 확대되는 분위기 역시 만한전석 만찬 사건과 유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이어진 결과, 중국은 다음해인 2018년부터 미국과 무역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던 미국이 드디어 칼을 뽑은 것이다. 아이러니한 전개 양상이다.  

만한전석이 환영받는 것은 단순히 음식의 가짓수가 많거나 진귀한 재료를 사용한 요리이기 때문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만한전석이 유명한 것은 수많은 요리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요리들 간에 상승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중국의 요리 연구가들이 만한전석을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조화로운 음식상을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실제로 만한전석에서 차가운 음식들은 만주족의 음식에서 영향을 받았고, 따뜻한 음식들은 한족의 음식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에 따라 만한전석을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정책과 태도 역시 이러한 형태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재탄생한 만한전석처럼 중국은 주변국과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해 기존의 고압적 태도를 버리고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주변국과의 마찰을 줄이고, 상호보완적인 파트너를 확보하기 위해 허울뿐인 양보가 아닌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의 사귐. 즉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우정)와 같은 실질적 관계 구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주변국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위해 중국은 새로운 시험대에 서야 할 때가 되었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원광대:한중문화연구원>에서 발표해 주었다.




춘추시대 제()나라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두 인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나라는 폭군 양공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지요. 결국 공자 규는 관중과 함께 노나라로 망명했고, 규의 동생인 소백은 포숙과 함께 거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양공이 권력 쟁탈전 끝에 살해되고 나라는 혼란이 계속되어 군주의 자리가 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두 공자는 서로 왕위에 오르기 위해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죠. 이에 규는 관중을 보내 귀국길에 오른 소백을 암살하고 느긋하게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소백은 천만다행()으로 관중이 쏜 화살이 허리띠에 맞아 목숨을 구했고 부랴부랴 귀국해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결국 소백에게 잡힌 규는 자결하였고 관중은 사형 집행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이때 포숙이 나서서 소백에게 말하죠.
“전하, 전하께서 제나라에 만족하신다면 신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패자가 되고자 하신다면 관중 외에는 인물이 없을 것입니다. 부디 그를 등용하십시오.”


결국 관중은 자신이 죽이려던 자 휘하에서 재상이 되었고, 이후 명재상 관중의 보좌를 받은 소백은 제 환공에 올라 춘추5패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관중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일찍이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흐름에 따라 이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시대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싸움터에 나가 세 번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비웃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생아자() 부모(), 지아자() 포숙아야()).”


음, 관포지교보다 더 유명한 말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가 바로 여기서 나왔군요.



2019.5.23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시진핑, 트럼프에 108첩 식사 대접했지만(190308, 원광대 한중문화연구원).docx


시진핑, 트럼프에 108첩 식사 대접했지만(190308, 원광대 한중문화연구원).docx
0.0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