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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 70년]불혹 맞은 미•중 관계, 패권전쟁 결말은 & 대의멸친(大義滅親)

아판티(阿凡提) 2019. 9. 12. 05:12

첸치천(錢其琛) 전 중국 부총리는 2001년 베이징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을 통해 "미·중 양국의 종합 국력은 함께 논할 처지가 안 된다. 중국은 솟아오르고 있고 속도도 더디지 않지만 반세기 안에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 "중국은 미국에 현실적인 위협이 되지 않으며 미국 스스로도 중국을 적수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88~1998년 외교부장, 1993~2003년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하며 신중국 수립 이후 역대 최고의 외교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이지만 미·중 관계 예측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우선 간과한 것은 중국의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는 점이다. 덩샤오핑(鄧小平)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며 100년은 지나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봤다.

첸 부총리는 2002년 같은 장소에서 개최된 특강에서 "미국은 자신의 경제·안보 이익을 고려해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국제적 지위를 빌릴 필요가 있다" "중국의 성장은 미국이 부딪쳐야 하는 현실이며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 간 마찰은 끊이지 않아도 붕괴에 이르지는 않는다" "우리의 국력이 증가할수록 세계는 다극화로 가고 국제 관계의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같은 자신감은 2013년 집권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하는 일로 이어졌다.

신형대국관계는 충돌 및 대립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협력해 상생하는 관계를 뜻하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어느새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태평양에 중간선을 긋고 서쪽은 미국이, 동쪽은 중국이 관리하자는 제안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잠복해 있던 중국 위협론이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고,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환율전쟁과 금융전쟁, 기술전쟁으로 이어질 패권 경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71년 중국의 유엔 가입 및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등극,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 등이 분수령이 돼 1979 1 1일 양국은 공식 수교한다. 올해는 미·중 수교 40주년이 되는 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불혹을 맞은 셈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환율조작국 지정 등 경제적 공세, 홍콩·대만 문제 개입을 통한 정치적 공세,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감행하는 군사적 정세를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미 21세기 글로벌 헤게모니를 누가 쥘 것인지를 둘러싼 패권전쟁이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로 다가온 재선 전까지 대중 공세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일 공산이 크다. 중국으로부터 큰 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는 한 그럴 것이다.

선거와 여론에 목을 매는 미국 정치인들과 달리 시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은 시간을 무기 삼아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다만 고도 성장과 경제 발전에 따른 과실의 단맛을 알아버린 중국 인민이 수뇌부의 전략적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까. 미·중 패권전쟁의 향방은 중국 인민들의 대의멸친(大義滅親: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죽인다는 말로, 나라나 민족을 위한 일에 사사로운 정은 끊어야 한다는 뜻)하는 인내심 수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아주경제>의 기사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춘추좌씨전()》 은공조()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인 ()나라 환왕() 때의 일이다. 위()의 장공()은 충의지사 석작()의 진언에도 불구하고 환공()을 후계로 세웠다. 이복 형제인 주우()의 성품이 과격하고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공이 죽고 환공이 즉위하자, 석작은 은퇴하고, 주우와 가까운 아들 석후()를 불러 주우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 하였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과연 얼마 후 석작의 예견대로 주우가 환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후의 자리에 올랐다. 반역에 성공한 주우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영토를 넓혔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그를 잘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석후를 불러 이 문제를 해결하라 하였다.

여러 가지로 궁리하던 석후는 결국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석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천하의 종실인 주 왕실을 예방하여 천자를 배알하고 승인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어떻게 하면 천자를 배알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 왕실과 사이가 좋은 진()나라를 찾아보도록 하여라. 그러면 진공이 선처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재빨리 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주우와 석후 두 사람은 우리 군왕을 시해한 자들이니 바라옵건대 그 나라에 도착하면 곧바로 붙잡아 처형해 주십시오.” 진나라에서는 석작의 부탁대로 그 두 사람이 도착하자 바로 체포하여 위나라 관원의 입회하에 처형하였다. 석작은 군신간의 대의를 위해 아들까지도 죽인 것이다.

대의멸친이란 이와 같이 올바르고 큰 일을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도 희생시킨다는 말이다. 


2019.9.12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신중국 70년]불혹 맞은 미•중 관계, 패권전쟁 결말은(190910, 아주경제).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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