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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맞은 中 선전…초고속 성장 이면의 그림자 & 연목구어(緣木求魚)

아판티(阿凡提) 2020. 10. 27. 21:13

1980 8 26일 중국이 광둥성 선전()을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한 지 꼭 40년이 됐다.


개혁·개방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선전은 국내총생산(GDP) 14000배 증가라는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며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됐다.

공산당이 추진한 시장경제 실험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히며, 홍콩의 대체재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경영 환경, 민생·의료 인프라 부족, 한계에 직면한 인재 유치 등 과제도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특유의 폐쇄성이 선전의 국제 도시 도약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많다.

2018년 선전의 GDP 규모가 드디어 홍콩을 뛰어넘었다. 중국은 선전을 홍콩 이상의 글로벌 도시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선행 시범구 건설' 프로젝트다. 중국식 모델로 성장한 선전이 서구식 자본주의의 상징인 홍콩을 능가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게 최종 목표다.

홍콩의 반중 정서가 극에 달하면서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는 선전을 홍콩의 대체재로 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중이다. 그러나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주장도 있다. 
고도 성장 이면의 그림자는 의외로 짙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쓴소리를 할 정도다. 랴오왕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글로벌 도시와 비교하면 선전의 비즈니스 환경은 아직 격차가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과의 연계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아주경제>의 기사 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주(周)의 신정왕 3년(BC 318), 맹자는 나라를 떠나 나라로 갔다. 이미 50을 넘은 나이였다. 동쪽에 있는 제는 서쪽의 진(秦), 남쪽의 초(楚)와 더불어 전국 제후 가운데에서도 대국이었다.

선왕(宣王)도 재주있는 사람이어서, 맹자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가 아닌 부국강병이며, 외교상의 책모, 원교근공책, 합종책, 연횡책이었다. 선왕은 중국의 통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맹자와 선왕은 이런 문답을 하였다.

"임금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신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 나라 제후들과 원수를 맺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내게 대망(大望)이 있기 때문이오." "임금님의 대망이란 것에 대해서 말씀해 보십시오." 인의(仁義)의 왕도정치를 논하는 맹자에게 선왕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맹자는 낚시를 던지기 시작하였다. "전쟁의 목적은 의식(衣食)이오니까, 인생의 오락이오니까?" "아니오, 나의 욕망은 그런 것이 아니오." 선왕은 맹자의 교묘한 변술에 걸려들고 말았다. 맹자는 힘차게 논하였다.

"그러시다면 이미 다 알 수 있습니다. 영토를 확장하여 진과 초와 같은 대국으로 하여금 허리를 굽히게 하고, 중국 전토를 지배하여 사방의 오랑캐를 따르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방법 즉 일방적인 무력으로 그것을 얻으려 하는 것은 연목구어 같은 것으로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어렵습니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신을 다해도 결국은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망치는 큰 재난까지 입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옵니다." "재난을 당하는 까닭을 가르쳐 주시오." 선왕은 귀가 솔깃하여 다가앉았다. 이렇게 맹자는 교묘하게 대화의 주도권을 얻어, 인의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론을 당당히 설명해 갔다.

 

2020.10.27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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