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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분쟁과 코로나 시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변화와 한국의 대응 & 관포지교(管鮑之交)

아판티(阿凡提) 2021. 7. 8. 13:14

○ 한국은 유라시아 지역의 공동발전을 도모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일대일로 구상과 협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협력 원칙을 준수해야 함

-사업협력에서의 국제 규범 준수

-비전략적 사업 위주의 협력

-비전통적 안보협력의 강화

 

○ 현재 일대일로에 대한 한·중협력에서는 이같은 연성 협력이 최선으로, 미·중 분쟁의 유탄을 피하면서도 유라시아 개도국들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며, 사드 이후 엉클어진 한·중 간 감정을 완하하는데도 유용한 방식임

-다만 미·중 분쟁 등 국제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정부 차원에서는 위와 같은 원칙을 천명하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되, 수익을 쫒는 기업차원에서는 일대일로 사업에 개별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해야 함

 

○ 한·중 양국은 이와 같은 협력 원칙하에서 유라시아 수원국에 도움이 되고, 제3국 공동 진출 논의를 진행하는 플랫폼 설립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초기에는 양국 정부가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이란 뜻으로, 형편이나 이해 관계에 상관없이 친구를 무조건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다)의 자세로 플랫폼을 설립하되 실제적인 협력 협의는 기업 등 민간에서 주도하는 방식이 더욱 바람직함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인천연구원>의 발표 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춘추 시대 제()나라에 관중과 포숙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동업으로 장사를 하면서도 서로 뜻이 맞고 상대방에게 너그러운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그러다가 똑같이 관리가 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관중은 제나라 군주인 양공()의 공자() 규()의 보좌관이 되었고, 포숙아는 규의 이복 동생 소백()을 섬기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양공의 사촌 아우 공손무지()가 양공을 시해하고 임금 자리를 빼앗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바람에 목숨이 위태롭게 된 규는 관중의 도움을 받아 함께 이웃 노()나라로 달아났고, 소백은 포숙아와 함께 거()나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됨으로써 상황은 급변했다.

규와 소백 어느 쪽이 임금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고 말았다. 관중이 선수를 써서 소백을 죽이려 했으나 한 걸음 늦었다. 소백이 포숙아와 함께 재빨리 먼저 귀국하여 비어 있는 임금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그가 곧 환공()이다. 환공은 노나라에 규를 죽이고 관중은 압송하라고 요구했다. 그리하여 환공이 오랏줄에 묶여 칼을 쓴 모습으로 끌려온 관중을 죽이려고 하자, 포숙아가 엎드려 간곡히 말했다.

“전하, 한 나라의 주인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의 보필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하신다면 부디 관중을 발탁해 쓰셔야 합니다.”

환공은 결코 옹졸하고 눈이 어두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전부터 관중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포숙아의 건의대로 관중에게 대부() 벼슬을 주어 정사를 맡겼다. 과연 관중은 환공과 포숙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이와 같은 정치 철학 아래 백성들을 위하고 선정을 베풀어 국력을 축적해 나가 환공은 마침내 여러 제후들을 굴복시키고 춘추 시대의 패권을 쥐게 되었다. 포숙아는 관중의 성공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관중은 그런 포숙아가 더없이 고마워 곧잘 이런 소리를 했다.

2021.7.8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미&middot;중 분쟁과 코로나 시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변화와 한국의 대응(210601, 인천연구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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