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피난(避難)

아판티(阿凡提) 2013. 7. 29. 06:53

중국어의 뿌리가 곧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잘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식’의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를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무엇인가를 비켜선다는 뜻을 담은 한자가 피(避), 어려움을 뜻하는 글자가 난(難)이다. 그래서 내게 닥치는 위험을 피해 어느 한 곳으로 도주하는 게 피난(避難)이다. 우리식 한자 씀씀이에서는 별로 구별을 짓지 않지만, 중국은 이 ‘난’이라는 글자를 소리에 맞춰 함께 내는 높낮이 표시용 성조(聲調)로 차별화해 뜻을 가른다.

 

흔히 ‘어려움’의 새김으로 이 ‘난’이라는 글자를 알고 있지만, 여기에는 전쟁이나 혹심한 가뭄 등에 의해 발생하는 재난(災難)의 의미도 담겨 있다.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큰 위기를 표시할 때 이 ‘난’이라는 글자를 쓴다. 따라서 ‘피난’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뜻은 ‘전쟁과 대형 재난 등을 피함’이다.

 

요즘 ‘조세(租稅) 피난처’가 유행이다. 한국의 일부 대기업을 포함해 25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조세 피난처’는 영어로 ‘tax haven’이다. 안식처, 또는 피난처라는 게 사전식 번역이다. 그런 번역어와는 달리 이곳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런 곳에 ‘조세 피난’이라는 말을 쓴다면 영락없는 언어 인플레이션이다. 과장도 그런 과장이 없을 뿐 아니라 보는 각도를 달리해 세금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을 정당화시켜주는 구석이 있다. 이곳을 즐겨 사용한 기업인들이나 돈 많은 한국의 부자들이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몰려든 곳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에 속한 국민으로서 이행해야 할 신성한 납세의 의무를 져버린 사람들이다. 따라서 시쳇말로 ‘먹튀’에 해당하는 인물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가혹한 재난을 피한다’는 뜻의 ‘피난’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조세 피난처’의 이름을 바꾸자. 의무를 져버리고 튀는 ‘도피(逃避)’라는 단어가 더 이들에게 어울리므로, 우리는 그 이름을 ‘조세 도피처’로 해야 옳겠다. 그 사람들 역시 ‘피난민(避難民)’이 아니라, 납세의 의무를 회피하려 도망친 ‘조세 도피민(逃避民)’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한자를 점차 잊어가는 세태는 마침내 이들이 향한 곳을 ‘조세 피난처’로 부르는 과오를 불렀다.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언어의 숨은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남용을 하다가는 어느덧 세금을 탈루하고서도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불쌍한 피난민과 혼동하는 결과를 빚는다.

 

2013.7.29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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