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6.교정(校正)

아판티(阿凡提) 2013. 9. 3. 05:38

중국어의 뿌리가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쓰인 글에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일이 바로 교정(校正)이다. 글자 ‘교(校)’에 그런 행위를 가리키는 새김이 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게 ‘바로잡다’의 의미를 지닌 ‘정(正)’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뿌리를 좇아 올라가면 우리는 이상한 글자와 마주친다. 바로 원수(怨讐)를 뜻하는 ‘수(讐 또는 讎라고도 쓴다)’라는 글자다.

 

교정이라는 글 다듬기 작업과 ‘원수’는 도대체 어떻게 어울릴까. 과거 중국에서는 글 교정 작업을 수서(讐書)라고 적었다. 교정을 맡은 사람 둘이서 서로 마주 보며 앉아 한 사람은 읽고 한 사람은 내용을 보면서 매우 치밀하게 글을 다듬는 작업이었다. 원래 그 뜻에서 출발한 ‘수’라는 한자는 글을 다듬는 두 사람의 태도가 마치 적을 대하듯 심각하게 다투는 모습을 닮았다는 이유로 ‘원수’의 의미를 얻었다고 보인다.

 

종이를 발명하기 이전에는 대나무 등을 쪼개 만든 죽간(竹簡)이나 얇은 비단 등에 글을 썼고, 다시 그 내용을 다른 죽간이나 비단 등에 옮기는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으니 한 글자 한 글자를 다루는 신중함이 보통이 아니었으리라. 따라서 한 글자에 쏟아 붓는 주의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스트레스는 현대의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수교(讎校) 또는 교수(校讎)다. 아울러 교서(校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글을 다듬는다고 해서 대서(對書) 또는 대교(對校)라는 단어도 나왔다. 교감(校勘)과 교열(校閱)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 정확하며 그르침이 없는 결과를 얻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과정이다.

 

종이가 세상에 선을 보여 글 쓰고 다듬는 과정이 좀 나아졌겠으나 교정에 관한 노력은 여전했을 법.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글을 만지고 다듬는 과정은 매우 수월해졌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틀리면 지우개나 뭐 그런 것 없이도 그냥 지우고 다시 쓰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우리 청와대도 그런 흐름에 푹 빠졌나보다.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청와대 경제팀이 중산층으로부터 사실상 증세를 시도했다가 여론의 질타에 밀려 입장을 바꾼 일 말이다. 물론 글을 다듬는 작업은 아니었으나, 막바지에 그를 세심하게 따져보는 ‘내용의 교정’에서는 실패한 셈이다.

 

얼굴을 붉혀 가면서 원수를 대하듯 글을 다듬고 다듬었던 옛 동양의 교정자들로부터 청와대는 아무래도 크게 배워야 할 듯하다. 국민을 상대로 내놓는 정책의 무게에 비춰 그를 다듬고 고치며, 마지막 순간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하는 치열함은 어디에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9.3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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