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7.청문(聽聞)

아판티(阿凡提) 2013. 9. 5. 05:32

중국어의 뿌리가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듣고 보는 행위를 한자로 표현하면 시청(視聽)이다. 또 다른 한자 단어는 견문(見聞)이다. 둘 모두 듣고 보는 동작을 일컫는 한자 단어다. 그러나 새김에 있어서는 조금 차이가 있다.

 

앞에 나오는 ‘시청’은 듣고 보는 동작에 관한 직접적 표현이다. 뒤의 ‘견문’은 듣고 보는 ‘시청’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는 행위에 관한 표현이다. 예를 들자면 그저 보고 듣기만 할 뿐 제대로 그 정보의 의미 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건성으로 보고 듣는다는 얘기다. 이럴 때 쓰는 성어가 ‘시이불견(視而不見), 청이불문(聽而不聞)’이다. 보되(視而) 제대로 안 보며(不見), 듣되(聽而) 제대로 듣지 않는(不聞) 사람의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단순히 보고 듣는 동작 ‘시청’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견문’과 다소 차이가 있다.

 

유교의 경전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이렇다. 보고 듣는 행위는 결국 올바른 지식을 쌓기 위함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분노가 있거나, 좋고 싫음 또는 걱정과 근심, 나아가 두려움 등이 있으면 그에 이르지 못한다. 감각기관의 기능만 작동할 뿐 진정한 보고 들음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보고 듣는 ‘견문’이라는 단어가 한편으로는 옳게 쌓은 ‘지식’이라는 의미를 획득하는 이유다. 따라서 건성으로, 때로는 제 이익만을 위해 바른 태도를 지니지 않고 보고 듣는 일이 ‘시청’이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진지하게 상대를 관찰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임이 ‘견문’이다.

 

매번 변죽만 요란하게 울리다가 흐지부지 끝을 맺는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 청문회. 이번 ‘국정원 요원 댓글’ 사건을 두고 벌인 국정조사 청문회도 같은 꼴의 무기력한 반복이었다. 사람 불러 놓고 제 당파적 입장에 따라 열심히 보고 듣는 척 했지만, 역시 실체적 진실에 전혀 다가서지 못했다.

 

제대로 듣겠다고 한 자리에 모인다 해서 붙인 이름이 청문회(聽聞會)이겠으나, 이름 바꾸는 게 좋겠다. 듣되 제대로 듣지 못하는 모임, ‘청이불문회(聽而不聞會)’가 어떨까. 조금 길어 외우기 어렵다면, 듣고서도 오히려 귀먹는다는 의미로 ‘청롱회(聽聾會)’는 어떨까. 아무튼 갈수록 기가 막히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의 대한민국 국회다.

 

2013.9.5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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