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고사성어, 추천하고픈 글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5. 시비(是非)

아판티(阿凡提) 2013. 12. 4. 05:33

중국어의 뿌리가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한국을 뜨겁게 달구는 단어가 시비(是非)입니다. ‘옳음’을 의미하는 ‘是’와 ‘그름’을 뜻하는 ‘非’라는 두 글자가 함께 병렬해 있는 상태죠. 이렇듯 서로 뜻이 반대인 글자를 나란히 놓아 상황에 대한 판단 등을 묻거나 가리키는 식의 단어는 즐비합니다.

 

위냐 아래냐를 따지자는 게 상하(上下), 낮과 밤을 가리키는 주야(晝夜), 밝음의 여부를 묻는 명암(明暗), 추위와 더위를 표현하는 한서(寒暑), 꽃 등이 피고 짐을 따지는 영고(榮枯) 와 성쇠(盛衰) 등이 있죠.

 

이 번 글의 주제는 그러나 ‘시비’입니다. 이와 비슷한 새김의 단어는 곡직(曲直)이있죠. 굽었는가(曲), 아니면 제대로 뻗었는가(直)를 묻는 것입니다. 정확한가, 아니면 틀렸는가를 가리키는 단어로는 정오(正誤)가 있죠. 색깔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흑백(黑白)입니다. 검은 쪽이냐 아니면 흰 쪽이냐를 묻는 것이죠. 나아가 파랑이냐 빨강이냐를 따지는 청홍(靑紅)도 있습니다.

 

다 ‘시비’와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죠. 시비는 옳고 그름의 새김을 떠나 그 따지는 행위로 생겨나는 혼란과 분규도 가리킵니다. ‘곡직’이라는 단어는 ‘이런 저런 사정 따지지 않고…’라는 의미의 ‘불문곡직(不問曲直)’이라는 성어 때문에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하죠.

 

‘정오’는 출판업계에서 자주 사용했던 정오표(正誤表)의 용례가 대표적이죠. 책을 만든 뒤 잘못 쓴 오자(誤字)나 누락한 탈자(脫字) 등을 바로잡아 만든 표입니다. 색깔이 등장하는 ‘흑백’이나 ‘청홍’은 때로 사람을 압박하죠. 당신은 어느 편에 서있는가를 묻는, 이른바 ‘진영(陣營)의 논리’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국가와 사회의 틀 안에서 벌이는 시비가 제대로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진흙 밭 강아지 싸움만으로 흐르는 경우입니다. 차분하게 시비를 따지는 자질은 우리에게 애당초 없는 덕목일지 모르죠. 국정원 댓글과 검찰의 내분 등을 둘러싼 정쟁은 마냥 벌어지지만, 차분하게 그 경위를 따져 ‘정오표’를 작성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니 말입니다.

 

잘함과 잘못함의 ‘잘잘못’, 즉 시비를 가르는 일은 어엿한 법과 제도를 갖춘 우리 사회에게 불가능한 작업이 결코 아니죠. 그러나 정파적 이익에서 벌이는 다툼이 아주 그악해 시비가 흑백의 다툼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너 죽고 나 살자’ 식 선악(善惡)의 정쟁으로까지 번지니 한심하기만 합니다.

 

콩과 보리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 숙맥(菽麥)이죠. “이 숙맥 같은 인간아!”라고 하면, 그는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요즘 증권가 지라시에는 “올해에도 여의도에 콩과 보리 대풍이 들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 다닌답니다. 사실일까요.

 

2013.12.4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