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의 뿌리가 곧 한자(漢字)입니다. 따라서 한자를 잘 알면 중국어도 익히기 쉽죠. 둘을 동시에 배우는 기획을 하신 분이 중앙일보 유광종 기자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식’의 시도이죠. 한자로 이뤄진 단어에 재미난 칼럼과 중국어 단어와 숙어, 성어(成語) 등을 싣고 설명을 곁들입니다.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를 연속하여 소개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중앙일보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훌륭한 기사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고전의 명시 한 구절 감상하자.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다. 제목은 ‘오의항(烏衣巷)’이다. 유비와 관우가 등장하는 삼국시대 때 검은색 옷(烏衣)을 입은 군대가 주둔했던 거리(巷), 나중에는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고급 주택가가 시의 배경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세월이 수 백 년 지난 뒤인 당나라 시절 마치 서울의 ‘강남 청담동’ 같았던 고급 주택가가 평범한 거리로 변한 모습을 읊는다.
“옛적 왕사 대인의 처마에 들던 제비, 이제는 평범한 백성의 집에 날아온다(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시인은 옛날 고관의 멋진 집에 머물던 제비가 이제는 ‘심상’한 백성의 집에 살고 있다는 회고(懷古)의 감회를 시에 담았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무상함을 더한다는 것이 시의 정조다.
심상은 여기서 ‘평범함’이다. 그러나 이 글자 둘, 심(尋)과 상(常)은 원래 길이를 나타내는 척도의 단위였다. 작은 면적, 짧은 거리를 가리키는 글자이기도 했다. 중국 고대의 길이 단위에서 ‘심’은 대략 1.2~1.6m, 상은 2.4~3.2m 정도다. 면적으로 따져도 심상은 약 11~13㎡다.
따라서 두 글자를 합칠 경우의 ‘심상’은 크지 않은 면적, 또는 그리 길지 않은 길이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나중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그저 그렇고 그런 것’ ‘귀하지 않은 것’ ‘하찮은 것’ 등의 의미를 획득한다.
‘상’은 우리의 용례도 적지 않다. 우선 조선시대다. 문무(文武) 양반(兩班)의 자리에 올라야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았던 시절이 조선 때다. 그런 양반을 뜻하는 ‘반(班)’과 상민, 나아가 상놈의 뜻으로 쓰는 ‘상’이 대립적으로 쓰인 사례가 ‘반상(班常)’이다. TV 사극에서 “네 이놈, 너는 반상도 제대로 구별할 줄 모르느냐”고 호통치는 조선 양반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이런 심상의 반대어는 ‘수상(殊常)’이다. 정상적인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물 또는 현상이 일반적인 수준을 떠난 상태다. 고국산천과 헤어지는 장면을 읊은 김상헌(1570~1652)의 시조 속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 동 말 동 하여라”는 구절이 그 예다. “수상한 사람은 간첩이니 신고하라”던 1960~1970년대 반공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했던 단어다.
‘국민참여 재판’이라는 이름을 건 이상한 평결이 자꾸 터져 나오는 요즘이다. 이게 바로 ‘심상찮은’ 현상이다. 법리는 거의 무시하고, 평결에 참여한 일반인의 정서만이 돋보인다. 정서적인 측면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참여한 이런 평결은 심각하다. 검찰의 혼란상에 이어 법원마저 비틀거린다. 법원까지 수상해지는 요즘이 정말 심상찮은 시절이다.
2013.12.10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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