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판티 이야기/중국출장 이야기

숨막히게 돌아가는 북경, 북경인

아판티(阿凡提) 2011. 7. 26. 16:16

  금번 북경출장(7/19~23일)에서 아판티는 중국의 새로운 모습을 참으로 많이 보았답니다. 그 중에서도 가슴아프게 한 것은 현지인들이 안고 있는 과도한 업무량과 과중한 스트레스였지요. 도무지 여유가 없더군요. G2로 부상한 중국의 화려함 뒤에는 일반 시민들의 고통이 도사리고 있었죠. 점심시간에 만난 사회과학원의 所長은 식사 중 연신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몇 번이나 수저를 놓곤 하였고, 그동안 모임을 가질 수 없었다는 중국 석사 동창들은 외국인 아판티가 찾아 왔다는 구실로 겨우 모였는데 그게 1년 만이랍니다. 1년 전이면 바로 아판티가 북경을 방문하여 그들과 모임을 가졌던 시기죠.

(아래 사진은 중국 석사동창생들, 앞쪽 오른쪽이 아판티)

 

 

  아판티가 유학생활을 시작한 1993년, 그시절에는 우리나라 사회가 무척 빠르게 움직였었고 그 속 구성원들도 같이 뛰지 않으면 낙오되는 그런 사회였지요. 당시 중국 사회는 멈춤의 단계에서 서서히 움직임을 시작하는 그런 시기였기에 중국인들에게는 여유가 보였어요. 저녁 5시 경이면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는 동네 바깥에 모여 얘기 꽃을 피우거나 공원에서 춤을 추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저녁 9시 경이면 가로등이 꺼지면서 인적이 뜸해지는 그런 시기였죠. 한적한 밤을 누비는 이는 바로 우리 유학생들이었어요.

 

  아판티는 그런 느린 사회의 중국이 좋았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어차피 한 번 살고 갈 인생 그렇게 빨리 움직여 뭘 한담" 그런 철학을 가진 아판티에게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낙오되는 당시 한국인들은 무척 애처롭게 보였죠.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한국은 잠재성장율 저하와 함께 경제가 성숙단계에 들어서면서 변화 속도가 늦추어지는 반면, 중국은 당분간 계속 가속도가 붙으면서 돌진하겠지요.

 

  당시 아판티를 즐겁게 했던 저렴한 중국 물가도 흘러간 얘기가 되어버렸어요. 한국에서 월급을 받고 중국에서 소비하면 가장 행복하다는 그런 시절이었죠. 이제 북경이나 상해의 물가는 가파르게 뛰어 이미 서울 수준에 이르렀고, 1인당 소득을 감안한 집 값은 서울을 훨씬 추월해 버렸죠.

 

  이제 중국은 아판티를 즐겁게 했던 그런 나라가 아니랍니다. 숨가프게 달려야 겨우 경제성장의 과실을 향유할 수 있는 자리에 합석할 수 있는 초경쟁사회로 변해버린 거죠. 중국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하는 것은 우리 <중국금융 산책>가족들도 예외가 아니겠죠.

 

2011.7.26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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