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중국 문화

중국인과 중국문명을 만든 여덟 권의 책 & 군계일학(群鷄一鶴)

아판티(阿凡提) 2017. 5. 13. 05:17

실상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적지 않다. 남북분단, 인구문제, 고령사회, 기후변화, 4차 산업혁명 등 어느 하나 간과하거나 경시할 수 없는 쟁점들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전히 중국이라고 논자는 생각한다. 첫째 나머지 쟁점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둘째 중국인과 중국문명에 대한 한국의 이해가 피상적이며, 셋째 중국과 관련하여 전문가가 부족한 분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논자는 여기서 책 특히 고전을 통해 중국인과 중국문명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중국이 전통적으로 책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먼저 정통사상이자 전통의 핵심이었던 유학이 독서를 중시하였으며, 송대 이후 중국의 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독서인이었다. 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이라는 4대 발명에서도 두 가지가 책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중국에는 유구한 출판과 독서의 역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이 광범하고 심원하다고 할 수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가 상징하는 수많은 중국의 책, 경사자집(經史子集)으로 분류되는 다양한 중국의 책. 그중에서도 고전이란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오랜 세월을 통해 증명되었고,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는 근본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면에서 중국인의 사유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고전을 부단하게 되풀이하여 읽는 가운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중국의 고전은 한편으로 중국인의 사유를 반영하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인의 사유를 형성하는 텍스트인 것이다. 따라서 중국을 이해하고자 할 때, 중국인과 중국문명을 형성한 중국의 기본고전을 읽는 것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논자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여덟 권의 필독서를 중국인의 사고를 형성한 고전과 중국 문명을 형성한 고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중국인의 사고, 다시 말해 중국적인 사유방식을 형성한 고전으로는 『논어』, 『노자』, 『손자』, 『주역』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중국 문명을 형성한 고전으로 『사기(史記), 『황제내경(黃帝內經), 『두시(杜詩), 『홍루몽(紅樓夢)』을 들 수 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인물이 진시황이지만, 이는 정치적 통일에 불과하다. 중국의 고대 문명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는 최초의 정사인 사마천 『사기』의 편찬이다. 중국 문명은 무엇보다 역사적 정통성을 중시하는데, 이는 각 왕조의정사편찬으로 상징된다. 참고로 한글로도 완역이 된 송나라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지식인들에게 중국의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만든 고전이며, 모택동의 애독서이기도 하다.

 

중국의 수많은 책 중에서 이상의 여덟 권은 군계일학(群鷄一鶴: 닭의 무리 중에 있는 한 마리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말)과도 같으며, 중국 문명의 역사에서 진행된 주요 변천과도 대응하고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읽는다면 의의가 배가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관행중국(인천대)에서 발표해 주었습니다.

 

 

 위진(魏晉)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중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嵆康)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되는 아들 혜소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당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던 이부(吏部)에서 벼슬하던 산도(山濤)가 무제(武帝, 256∼290)에게 다음과 같이 청하였다.

"폐하,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혜소가 가진 슬기와 지혜는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으로 등용하옵소서."

무제는 그가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면 더 높은 자리를 줘도 좋다고 말하며 비서승(秘書丞)으로 혜소를 기용했다. 혜소가 처음으로 낙양(洛陽)에 입성하자,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제 혼잡한 인파 속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드높은 기개와 혈기가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더군요."

 

 

2017.5.13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중국인과 중국문명을 만든 여덟 권의 책(170402, 관행중국, 인천대).docx

 

1753

중국인과 중국문명을 만든 여덟 권의 책(170402, 관행중국, 인천대).docx
0.1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