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판티 이야기/강의, 출연, 세미나

2017thebell 차이나컨퍼런스 진행을 마치고 & 관포지교(管鮑之交)

아판티(阿凡提) 2017. 6. 3. 05:31

 (2017thebell  차이나컨퍼런스 사회를 마치고, 왼쪽부터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 Li Bingfeng(李冰峰) 通利科技(Tongli optech) 한국지사 서울 대표, 아판티, 박승찬 용인대 교수, Zhu Shijie(朱世杰) 中钰资本(Ch-Gemstone Capital)파트너, 이강석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부사장)

 

지난 5.26일(금) 오후시간, 남산에 자리잡은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에서는 '4차 산업혁명시대 도래에 대한 한중협력의 새로운 기회와 돌파구'라는 제목의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3개의 세션으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아판티는 3번째 세션의 진행을 맡았다.

 

'차세대 기술혁명 속 한중 첨단제조업의 합작 및 투자 기회(중국 자본 투자 유치와 산업간 협력 필요성)'라는 제목의 본 세션에는 중국측에서 두 분, 한국측에서 두 분이 참석하였다. 이 분들은 각각 토론자와 발표자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판티는 진행을 맡았다.

 

진행을 맡은 아판티의 마무리 멘트를 아래에 소개한다.

 

지금까지 약 1시간 40분에 걸쳐 차세대 기술혁명 속 한중 첨단제조업의 합작 및 투자 기회라는 테마로 발표와 토론 및 질문이 있었습니다. 플로워의 열띤 분위기를 봐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긴 합니다만, 행사일정상 부득이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은 현재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고,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202

5”에서 신소재산업과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선정하였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하고 있습니다.

 

중국기업이 가지고 있는 넓은 시장과 한국기업이 가지고 있는 높은 기술이 상호 융합하여 시너지 효

과를 내고, 이를 통해 한국과 중국기업이 재도약하며, 양국경제가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번 행사

는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과 같이 변하지

않는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로 이웃하고 있는 한중 양국이

샤드관련 불편함을 털어내고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투자협력을 통해 상호 WIN-WIN할 수 있

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오랫동안 경청하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중국에서 오신 발표자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같이 뜨거운 박수와 함께 행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판티는 '히말라야 순례길(6/3~23일)'을 떠납니다. 더 많이 내려놓고 비우고 오겠습니다.

 

 

 춘추시대 제()나라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두 인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나라는 폭군 양공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지요. 결국 공자 규는 관중과 함께 노나라로 망명했고, 규의 동생인 소백은 포숙과 함께 거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양공이 권력 쟁탈전 끝에 살해되고 나라는 혼란이 계속되어 군주의 자리가 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두 공자는 서로 왕위에 오르기 위해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죠.

 

이에 규는 관중을 보내 귀국길에 오른 소백을 암살하고 느긋하게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소백은 천만다행()으로 관중이 쏜 화살이 허리띠에 맞아 목숨을 구했고 부랴부랴 귀국해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결국 소백에게 잡힌 규는 자결하였고 관중은 사형 집행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이때 포숙이 나서서 소백에게 말하죠. 전하, 전하께서 제나라에 만족하신다면 신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패자가 되고자 하신다면 관중 외에는 인물이 없을 것입니다. 부디 그를 등용하십시오.

 

”결국 관중은 자신이 죽이려던 자 휘하에서 재상이 되었고, 이후 명재상 관중의 보좌를 받은 소백은 제 환공에 올라 춘추5패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관중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일찍이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흐름에 따라 이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시대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싸움터에 나가 세 번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비웃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생아자() 부모(), 지아자() 포숙아야()).”관포지교보다 더 유명한 말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가 바로 여기서 나왔군요.

 

 

 

2017.6.3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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