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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의 '주한미군 철수' 아이디어에 대하여 & 누란지위(累卵之危)

아판티(阿凡提) 2017. 8. 26. 06:03

 

북한에 관한 양 측(미국과 중국)의 목표와 관심사를 통합할 수 있을까? 중국과 미국은 모든 당사자들을 더욱 안전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핵무기 없는 통일된 한국을 위해 협력적인 전략을 도출해 낼 수 있을까? 그러한 결과는 그토록 자주 언급되지만 아주 더딘 속도로 등장하고 있는 '신형 대국관계'를 향한 대단한 진전이다. (262)

 

헨리 키신저의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중에서(민음사)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반도 정세가 요즘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이와 관련된 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언급'이 나왔습니다. 헨리 키신저가 트럼프 행정부에 조언했다는 '미중 합의 주한미군 철수' 아이디어가 그것입니다.

 

헨리 키신저가 누구입니까. 닉슨 대통령 때 미국과 중국의 국교정상화를 만들어낸 미국 외교가의 거물입니다. '과거의 인물'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닙니다. 그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인 2014년에 'World Order'라는 책을 출간했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전히 영향력이 큰 인물입니다. 위에서 소개해드린 대목도 그 책에서 고른 내용입니다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직후 키신저를 자신의 거처였던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로 초청해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해 조언을 들었었지요.

 

뉴욕타임즈는 이런 키신저가 북한의 ICBM 도발 직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에게 "북한 정권 붕괴 이후의 상황에 관해 미국이 중국과 합의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조언을 했다고 며칠전 보도했습니다. (제목 'After North Korea Test, South Korea Pushes to Build Up Its Own Missiles', 2017.7.29)

 

참고로 기사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I believe we have a better chance of getting to the nuclear problem with North Korea if we first come to an agreement with China about what follows after the collapse of the North Korean regime”...

 

완충역할을 하던 북한이 사라질 경우 미군이 국경선 가까이에 주둔하게 되는 것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미국이 북한 붕괴 이후 한반도에서 대부분의 미군을 철수한다는 약속이 포함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 내용도 원문도 같이 보시지요.

 

That would include a commitment from the United States to withdraw most of its troops from the Korean Peninsula after a North Korean collapse, to allay the Chinese fear that, with the buffer of North Korea gone, the United States military would be right on its border.

 

'주한미군 철수'가 아이디어의 차원이기는 하지만 미국 정부의 핵심들 사이에서 요즘 언급이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뉴욕타임즈는 이런 키신저의 아이디어를 중국이 신뢰할지 의문이라는 코멘트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키신저의 언급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며 흘려 들을 내용이 아닙니다. 동북아, 특히 한반도의 세력균형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 분명하고, 아마도 더 나아간다면 한미동맹 약화에 이어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입니다.

 

좌파든 우파든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이익 때문이므로, 미국은 절대로 철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이들이 일부 있습니다. 나이브한 생각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미국이 원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원해서 만들어진 구도입니다. 현대사의 사료들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키신저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미중 합의 주한미군 철수'를 조언했다는 뉴욕타임즈의 보도는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균형이 급변할 수 있다는, 그리고 그 방향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쪽일 수도 있다는 누란지위(累卵之危:알을 쌓아 올린 것처럼 아슬아슬한 위험. 몹시 위험한 형세)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리아 패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군사외교 전략이 정말 중요한 시점인데, 걱정입니다.

 

위 내용은 <예병일의 경제노트>에서 빌어온 것입니다.

 

 

 

 (사기)≫ (범수채택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遠交近攻(원교근공)(대외정책)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범수)는, 그의 조국인 위나라에서 억울한 죄명으로 하마터면 죽을 뻔한 끝에 용케 살아나 祿(장록)이란 이름으로 행세하며, 마침 (위)나라를 다녀와 돌아가는 진나라 사신 (왕계)의 도움으로 진나라로 망명을 하게 된다.

 

이때 왕계가 진나라 왕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위나라에 장록 선생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천하에 뛰어난 (변사)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진나라는 지금 알을 쌓아 둔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 나를 얻으면 안전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글로는 전할 수 없다’고 하는 터라, 신이 데리고 왔습니다.”

 

진나라는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범수를 부른다. 범수는 진나라 재상이 되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았던 수가를 혼내 주었다. 몹시 위험한 형세를 일컫는 말이다. 알을 쌓아 놓은 것이 무슨 큰 위험이 있겠는가마는 위태로운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적절하다. ‘累卵之勢(누란지세)’라는 말을 많이 쓴다. 비슷한 말로는 ‘百尺竿頭(백척간두)’, ‘風前燈火(풍전등화)’ 등이 있다

 

2017.8.26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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