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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품격... 이상화와 고다이라 & 간담상조(肝膽相照)

아판티(阿凡提) 2018. 3. 17. 06:05

 

1986년생인 고다이라는 뒤늦게 빛을 발한 선수다. 이상화가 500m 금메달을 거머쥔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고다이라는 12위를 차지했다. 2014 소치올림픽에선 500 5위였다.

 

당시 이미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나 고다이라는 은퇴 대신 유학을 결심했다. 빙속 최강국 네덜란드로 홀로 떠나 마리아너 티머르 코치 밑에서 네덜란드의 선진 기법을 배웠다.

 

고다이라는 과거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일본과 네덜란드에서 최고의 것만 뽑아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지만 내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것엔 제한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서른에 찾아온 전성기고다이라, 세 번째 올림픽서 첫 金 (연합뉴스, 2018.2.18)

 

(예병일의 경제노트)

예전부터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를 보면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미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냈는데, 그러니 이제 그만 하겠다고 말해도 될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2010 밴쿠버, 2014 소치 올림픽에서 같은 종목 금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을, 다시 도전하겠다며 4년 동안 고통스러운 훈련에 자신을 몰아넣은 그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어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3733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이자 역대 3번째로 3개 대회 연속 메달 획득입니다. 29세의 나이에 말입니다.

 

그리고 어제, 이상화 선수 못지 않은 선수를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이상화 선수의 바로 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32세의 고다이라 나오 선수입니다. 그는 어제 세 번째 참가한 올림픽에서 자신의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우선 나이에 놀랐고, 그녀의 도전에 놀랐습니다.

 

고다이라 선수는 이상화 선수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오랜 기간 이상화 선수에게 밀려 정상에 서지 못했습니다. 이상화가 500m 금메달을 땄던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는 12위였고, 2014 소치올림픽에서는 500 5위였습니다.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훌륭한 선수였지요. 1986년생. 나이를 생각하면, 그녀 역시 소치 이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만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치올림픽이 끝나자 이미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던 고다이라는 은퇴 대신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스피드스케이팅의 최강국인 네덜란드로 홀로 떠나 네덜란드의 선진 기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30대의 나이에 '최전성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말입니다.

고다이라는 지난 두 시즌 동안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완벽한 최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2016-2017시즌부터 국제무대에서 500m 정상을 한 차례도 내주지 않았지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에서 2016시즌 이후 15번 우승했고,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했습니다. 게다가 고다이라는 1,000m에서도 세계기록 보유자입니다. 결국, 고다이라 선수는 32세의 나이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어제 14조로 먼저 경기를 마친 고다이라는 올림픽 신기록에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다음 15조로 경기를 치를 이상화 선수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일본 관중의 소리 때문에 방해가 될까봐였다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금메달과 이상화 선수의 은메달이 확정된 후, 이상화 선수를 껴안으며 한국말로 "잘했어. 아직도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상화는 "이렇게 입때까지 해내는 당신이 대단하다"고 화답했다고 하지요

 

'품격'이 느껴지는 두 선수의 간담상조(肝膽相照: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뜻)하는 모습이미 충분히 성취했음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두 선수의 모습

 

휴일 저녁에 이상화와 고다이라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위 내용은 <예병일의 경제노트>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당대)의 두 (명문) 대가에 [한유: 자는 退(퇴지), 768~824]와 [유종원: 자는 (자후), 773~819]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 805~820) 때 (유주 자사)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 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끝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곧 상호 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을 나타내거나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를 일컫게 되었다.

 

 

 

2018.3.17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도전과 품격(180220, 예병일의경제노트).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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