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熊&기타국 이해하기/한국 정치,경제,금융

점진적 죽음 vs. 근원적 변화 & 사면초가(四面楚歌)

아판티(阿凡提) 2018. 6. 16. 05:51
 

 

 

근원적 변화란 이러한 기존의 지식과 기능을 다 버리고, '불확실한 세계로 발가벗은 채 뛰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선택이며, '정신적인 암흑기'라는 혼란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근원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31)

 

로버트 E. 퀸의 '딥체인지: 조직 혁신을 위한 근원적 변화' 중에서(늘봄)

 

(예병일의 경제노트)

(아래 글은 최근 출간된 위 책 '딥체인지'의 맨 앞부분에 제가 쓴 '개정판 발행에 부쳐'의 내용입니다.)

 

변화의 시대다. 인공지능(AI), 로봇, 블록체인, 4차 산업혁명, 테크놀로지 기반 바이오 헬스케어 서비스... 기술 발달이 휘몰아 오고 있는변화의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이다.

써 놓고 보니, 변화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은 세상이, 비즈니스가,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모습과 본질까지, 어떻게 어디까지 바뀔지 모르는근본적인 변화의 시대가 아닌가. 미래를, 아니 10~20년 후를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다.

 

그래서인가. 요즘 개인과 기업들은 불안하다. 안개 자욱한 불확실성 속에서 시대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해답을 찾기 힘들어서다. 변화의 시대이자 불안의 시대인 셈이다.

직장인들은 AI가 소멸시킬 것이라는 직업의 명단을 미디어에서 보며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생산직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심지어 의사, 회계사, 변호사들마저 AI와 로봇으로 인해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경고를 들으며,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과 경험이 어느 순간 쓸모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커가고 있는 자녀들이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도록 조언해줄지 모르겠다며 무력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기업들도 기술 발달이 자신의 비즈니스 영역에 어떤파괴적 변화를 가져올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등장, 계산대 없는 미래형 매장인아마존 고의 개장... 우리에게 익숙한, 해당 비즈니스의 전통적인 모습을 파괴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서비스들이 잇따라 출현하고 있다. 위 사례에 해당되는 현대기아자동차나 신세계그룹만 긴장할 일이 아니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매개로 완전히 새로운 컨셉과 경쟁의 룰을 만들어 기존의 강자들을 위협하고 배제시키려는 시도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필자는 2004 1117예병일의 경제노트칼럼에서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경제의 세계화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미루고 안주하다 초유의 IMF 사태를 겪었던 한국 사회에딥 체인지’(근원적 변화.Deep Change)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책을 다시 읽었다. AI와 로봇, 바이오 기술 등이 키워드로 등장한, 2020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시대야 말로 로버트 퀸 교수가 이 책에서 주장한딥 체인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로버트 퀸의 지적대로, 우리는 근원적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외면하고 싶어진다. 그게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 변화를 선택했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그때부터 고난과 위험이 시작된다. 정해져 있는해답도 없다. 불확실한 공간으로 뛰어 들어다리를 놓아가면서 강을 건너야 한다. 마음속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조직 내부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적어도 2년에 한 번은 자신의 일에 모험을 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멈춰서는 안 된다. ‘배움을 통해 다시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을 찾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과거에 성공한 방법으로는 다시 성공할 수 없다. 변화의 사이클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예전에 사무실 공유 서비스 기업인 위워크 코리아에 1인용 사무실을 임대해 한 달간 사용해본 적이 있다. 필자에게는 회사 사무실도 있고 서재용 개인 작업실도 있지만, 위워크가 시도한 딥 체인지를, 그들의 생각을 배우고 싶었다. 처음 외국 잡지에서 위워크의 비즈니스 모델을 접했을 때 필자는 사무실 공유 서비스의 시장성을 무시하며 평가절하 했었다.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인 임대 비즈니스에 어떤 변화를 주었기에 위워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들의 공간 그들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배우고 싶었다.

 

영화 인턴에서 노년의 로버트 드니로는 젊은 사장 앤 해서웨이의 회사에 인턴으로 일하며 이렇게 말한다. "전 여기에 당신의 세계를 배우러 왔어요(I'   m here to learn about your world)."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배움이고, 그것을 통한 도전이다.

 

끝을 알 수 없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바라보며 불안과 위축,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가. 눈을 질끈 감고 안주하면, 아직까지는 따뜻한 듯 느껴지는 지금의 상황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일 뿐이다. 그건 서서히 죽음으로 가고 있는슬로우 데스’(점진적 죽음.Slow Death)이다. 아니, 몇 년 전부터 사업 구조의 근본적 혁신을 추구하며딥 체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SK 최태원 회장의 말처럼, 이 시대에는서든 데스’(급사.Sudden Death)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편안한 길은 아니지만, 피곤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길이지만, ‘딥 체인지를 시도하는 것. 훗날 돌아보면 그것이 안전한 길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딥 체인지냐, 슬로우 데스냐... 근원적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앞에는 점진적 죽음이 있을 뿐이다. 개인과 기업 모두 말이다. 우리는 그런 사면초가(四面楚歌: 네 방향에서 적군이 부르는 노래가 들린다는 뜻이니,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 시대로 이미 들어섰다.

 

위 내용은 <예병일의 경제노트>에서 빌어온 것이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휴전을 한 지 두 달이 채 못 되어, 유방은 한신·팽월·영포 등 세 장군이 거느리는 세 군대를 한데 모아서 한신이 통수하게 하여 항우를 추격했다. 기원전 202년, 한나라군은 항우를 해하(, 안휘성 영벽현 동남쪽)에서 포위했다. 한신은 해하 주변에서 그 유명한 십면매복() 전술을 행했다. 항우의 군대는 군사와 말이 줄어들고 식량마저 바닥이 났다. 그래서 포위를 뚫고 나가려고 애를 썼으나 한나라군과 다른 제후들의 군대가 겹겹이 포위하고 있어서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뚫고 나가면 포위망이 조여들고 물리치면 또 적들이 조수처럼 진격해 들어와서 기진맥진한 항우는 해하에다 진을 치고 방어를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 항우가 군막 안에서 수심에 잠겨 있을 때 그가 총애하는 우희()라는 미인이 술을 권했다.

 

그런데 자정이 되자 서풍이 불어오더니 이어서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귀기울여 들어보니 한나라 군영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노래는 초나라 노래였고 부르는 사람 수가 대단히 많은 것 같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를 듣던 항우는 실성한 사람처럼 외쳤다. “큰일났군, 큰일났어. 유방이 초나라를 점령한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초나라 사람이 한나라 군영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항우는 수심에 잠겨 비장한 노래를 불렀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천하를 덮을 만하건만
시운이 불리하여 오추마(항우의 애마)도 나아가지 않네.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우희여, 우희여!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항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곁에 있던 우희와 시종들도 모두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그날 밤, 항우는 오추마에 올라 자제병 8백을 데리고 한나라 군영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날이 밝은 후에야 항우가 도망쳤음을 안 한나라군은 기병 6천을 보내어 추격했다. 항우가 회하에 이르렀을 때 수하에 남은 장병은 겨우 1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추격해 온 유방의 군대가 또다시 포위해 오자, 항우는 수하 장병들에게 말했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지 8년이다. 그 동안 큰 싸움을 70여 차례 치렀으나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천하의 패왕이 되었는데 오늘 이렇게 놈들에게 포위당하다니, 이건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그들한테 진 것이 아니다.”

말을 마친 항우는 겹겹의 포위를 뚫고 나가 오강(, 안휘성 화현 동북쪽)에 이르렀다. 그때 항우의 곁에는 이십여 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침 이때 오강의 정장이 배를 몰고 왔다. 배를 기슭에 댄 정장은 속히 배에 오르라고 항우를 재촉했다. “강동은 비록 작지만 1천여 리가 넘는 땅이 있고 수십 만이 되는 인구가 있습니다. 강을 건너 강동에 이르면 왕위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슬픈 미소를 띄며 말했다. “애당초 내가 회군에서 군사를 일으켰을 때 8천 강동 자제병을 거느리고 장강을 넘었소. 그런데 그들은 한 사람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소. 그러니 비록 강동의 고향 사람들이 나를 동정해 왕으로 세운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볼 면목이 없소.”

항우는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오추마를 정장에게 넘겨주었다. 수하 장병들도 모두 말에서 내렸다. 손에 단도를 틀어쥔 그들은 추격해 온 한나라 병사들과 육박전을 벌였다. 몇백이 넘는 한나라군이 쓰러지는 와중에 항우의 군사들도 하나둘씩 쓰러졌다. 가혹한 싸움에서 열 군데가 넘는 상처를 입은 항우는 오강 기슭에서 목을 베어 자살했다.

 

 

2018.6.16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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