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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향촌의 민간조정 관행 & 사면초가(四面楚歌)

아판티(阿凡提) 2019. 6. 12. 05:11

중국에서는 소송이라는 법률절차를 거치기 전에 향촌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민형사상의 분쟁에 대해 향촌내에서 진행되는 민간조정의 관행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청대 이후 중화민국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촌내에 조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여러 가지 분쟁에 대해 1차적인 조정을 진행하고, 촌내에서의 조정이 실패할 경우, () () 등의 상급 행정기구로 올라가게 된다



조정의 내용은 농지나 택지사용, 혼인, 이웃관계, 공유재산의 분배, 가족계획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다. 조정위원회의 조정을 거친 후에는 곧바로 자리에서 효력이 발생하며 당사자는 후회하거나 번복할 없다. 만일 상황이 변하거나 3자가 다른 주장을 경우에도 조정위원회가 재차 조정을 진행한다. 2 조정시에 조정위원회는 원래 조정의 전부, 혹은 일부 내용이 무효함을 선언할 권리가 있다.



촌민간의 조정협의는 촌내에서는 권위를 가지며 일단 조정이 효력을 발생하면 각자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약속위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촌민들은 신용과 평판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이는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폐쇄적이고 고립적이며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는 좁은 사회에서는 한번 신용을 잃은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의 경멸을 받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통상 상호부조의 형식을 통해 서로를 도와줄 있다. 이런 상호구제의 사회 속에서 신용을 상실하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분리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되면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가 되어 그가 생존할 방법은 거의 없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관행 중국>의 발표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나라의 패왕()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슬기로운 장수() 범증()마저 떠나 버리고, 결국 유방()에게 눌려 한()나라와 강화하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해하()에서 한()나라의 명장() 한신()에게 포위() 당()하고 말았다.


빠져나갈 길은 좀체로 보이지 않고, 병졸()은 줄어들며 군량미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군과 제후()의 군사()는 포위망()을 점점 좁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고달픈 초()나라 병사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였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고?」하고 탄식()했다.


그는 진중에서 마지막 주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유명()한 '역발산기개세()'의 시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고, 총애()받던 우미인()도 그의 시에 화답하고 자결()했다. 항우()는 800기()의 잔병을 이끌고 오강()까지 갔다가 결국 건너지 못하고 그 곳에서 자결()하고 마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한다.



2019.6.12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중국 향촌의 민간조정 관행(190201, 관행중국).docx


중국 향촌의 민간조정 관행(190201, 관행중국).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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