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熊&기타국 이해하기/한국 정치,경제,금융

개성공단, 통일 그리고 일대일로 & 관포지교(管鮑之交 )

아판티(阿凡提) 2019. 7. 11. 05:13


우리는 분단된 나라에서 70년을 넘게 살고 있다. 오랜 시간을 분단된 채로 살아가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분단 상황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통일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독일의 통일사례를 보면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있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며칠 전까지도 많은 독일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 통일이 올지 몰랐다고 한다. 오죽하면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빌리 브란트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15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독일통일이) 10 안에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까.


걱정이 되는 부분은 바로 우리나라의 통일은 독일보다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고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보다 분단기간도 훨씬 길고 6.25 전쟁이라는 참상까지 겪었다. 그러다보니 서로 간에 벌어져 있는 차이도 것이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여러 문제들이 훨씬 심각하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이 되며 그만큼 통일로 다가가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다양하게 생각해 있겠지만 결국 백문이 불여일견’, 먼저 부딪혀보고 경험하고 해결해보고 기록해놓는 연습의 과정을 거친다면 이보다 좋은 통일준비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개성공단에서 이러한 의미를 찾을 있을까?


동고동락한 시간이 누적되면서 수많은 합의 과정을 통해 남북이 서로의 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용하는 부분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합의서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합의내용을 토대로 일을 나가기가 수월해졌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쌓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합의 통해 차이를 극복했던 암묵적인 경험지식과 합의서 남겨진 기록들이 통일로 가는 과정과 통일 후에 얼마나 중요한 자료가 지는 불필다언(不必多言) 같다.

개성공단을 상품 브랜드의 가치와 중요성 인식, ‘품질향상 납기일 준수 위한 노력, 개인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와 각종 수당에 대해 민감한 반응과 실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하루하루 높아져 가는 모습을 확인할 있었다. 중국, 베트남, 동구권 국가들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험과 실천이 상당히 필요한데 개성공단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한 경험을 제공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개성공단과 일대일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실 남북의 전면적인 교류협력과정을 거쳐 화해와 통일의 길로 가지 못하고 한반도로 통하는 길이 열리지 않는 일대일로에서 중요한 문제인 동북 3성의 발전은 한계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북한문제로 인해 UN에서 혹은 국제사회에서 겪고 있는 신뢰도와 리더십의 문제는 일대일로를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있어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협력사업의 성공적인 발전과 중국의 일대일로는 같은 궤도에 올라가 있는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중국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주목하고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의 사귐. 즉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우정)의 자세로 함께 노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관행중국>에서 발표해 주었다.




춘추시대 제()나라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두 인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나라는 폭군 양공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있었지요. 결국 공자 규는 관중과 함께 노나라로 망명했고, 규의 동생인 소백은 포숙과 함께 거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양공이 권력 쟁탈전 끝에 살해되고 나라는 혼란이 계속되어 군주의 자리가 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두 공자는 서로 왕위에 오르기 위해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죠. 이에 규는 관중을 보내 귀국길에 오른 소백을 암살하고 느긋하게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소백은 천만다행()으로 관중이 쏜 화살이 허리띠에 맞아 목숨을 구했고 부랴부랴 귀국해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결국 소백에게 잡힌 규는 자결하였고 관중은 사형 집행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이때 포숙이 나서서 소백에게 말하죠.
“전하, 전하께서 제나라에 만족하신다면 신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패자가 되고자 하신다면 관중 외에는 인물이 없을 것입니다. 부디 그를 등용하십시오.”
결국 관중은 자신이 죽이려던 자 휘하에서 재상이 되었고, 이후 명재상 관중의 보좌를 받은 소백은 제 환공에 올라 춘추5패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관중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일찍이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흐름에 따라 이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시대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싸움터에 나가 세 번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비웃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생아자() 부모(), 지아자() 포숙아야()).”



2019.7.11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개성공단, 통일 그리고 일대일로(190502, 관행중국).docx

















개성공단, 통일 그리고 일대일로(190502, 관행중국).docx
0.0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