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龍 이해하기/중국 정치

홍콩의 시위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 & 막역지우(莫逆之友)

아판티(阿凡提) 2019. 11. 21. 05:03

최근 홍콩에서 발생한 일들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홍콩의 역사 및 현실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기에 조심스레 말을 꺼내야겠지만, 특히 중국정부의 대응과 관련하여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일본의 중국문학연구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90년대 이후 동아시아론의 유행과 함께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중국문학연구자로서 루쉰에 깊이 공감했으며, 일본의 근대화를 고통과 좌절을 토대로 성립한 것이 아닌 단순한 서구의 모방으로 평가했다. 특히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개념을 통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및 그 반동으로 제시된 아시아주의 양자를 사상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케우치의 사상은 이미 신문매체 등에서 여러 번 소개된바 있고, 다양한 연구논문도 나와 있다. 다케우치 사상의 분석에 있어서 쟁점이 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1942년에 발표한 '대동아전쟁과 우리의 결의'에서 제국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세계사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패전 후에도 이와 유사한 자세를 유지한 사실을 두고 여러 해석이 이루어졌다. 또한 다케우치와 민족주의의 문제, 혹은 조선인식에 관해서도 주목할 만한 문제제기가 등장한바 있다.  


당시의 다케우치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개념' '실체로서의 지역성에 의거한 저항'을 중첩시키고 있었다. 다시 말해 다케우치는 마오쩌둥 개인이나 중국공산당이라는 하나의 조직을 믿었다기보다,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발견한 '저항하는 아시아의 실체'에서 시시각각 삶을 옥죄어오는 지배와 폭력에 대항할 근거지를 구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당파성은 문학과 정치가 착종된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다케우치는 아직 꿈을 꿀 수 있는 것만으로 사상가로서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그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홍콩의 젊은이들과 그들에 대한 중국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다케우치가 이른바 근대와 자본주의가 가져온 막역지우(莫逆之友:서로 거스르지 않는 친구라는 뜻으로, 아무 허물없이 친한 친구 )적 노예적 상황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적 실체를 꿈꾸었던 '중국공산당'을 떠올릴 뿐이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한중관계연구원>에서 발표해 주었다.



장자()》 내편() 대종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의 우화가 나온다. 이 우화는 둘 다 바깥의 사물에 얽매이지 말고 천리()를 좇아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그 도입부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도 물론 가공 인물이다.

‘어느 날 자사()·자여(輿)·자려() ·자래() 네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능히 없는 것으로써 머리를 삼고, 삶으로써 척추를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겠는가. 누가 생사존망()이 일체임을 알겠는가. 내 이런 사람과 벗이 되리라.” 네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 그 뒤로 이들이 병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초연한 모습이 이어진다. 



2019.11.21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홍콩의 시위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190805, 한중관계연구원).docx



홍콩의 시위가 말해주고 있는 것은(190805, 한중관계연구원).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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