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熊&기타국 이해하기/기타국가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 20년이 지났지만… & 간담상조(肝膽相照)

아판티(阿凡提) 2017. 8. 4. 05:25

한 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선두에서 질주했던 홍콩(香港)의 공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이다. 홍콩은 1984 12 19일 중·영 양국이 '홍콩에 관한 중영공동성명(中英關與香港問題的聯合聲明)'의 조인에 따라 1997 7 1일 중국에 반환됐다. 이후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 一國兩制)'를 따른 홍콩기본법을 기초로 특별행정구를 설립하고 향후 50년 동안 자본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비록 식민지의 식민(植民)이었지만 자유와 부를 누리고 있던 홍콩 사람들이 중화인민공화국에 통합되어 '하나의 중국'으로 편입된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당한 공포감이었다. 공산혁명기 중국공산당의 행적과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많은 홍콩인들은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조국(祖國)' 보다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의 이주를 택했다.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이소룡, 주윤발, 장국영 등의 홍콩 영화산업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반환 20, 홍콩 경제는 완전히 중국의 위안화 경제권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중국 대륙관광객이 1997 22.1%( 229만 명)에서 2016년에는 75.5%( 4277만 명)으로 증가하면서, 이들의 소비가 없이는 홍콩 경제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4년 후강퉁(沪港通), 2016년 선강퉁(深港通)으로 중국과 홍콩의 경제통합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서의 지위는 상하이(上海)에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정치질서에서 홍콩은 '일국양제(一國兩制)' 약속의 실천으로 자유민주주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헌법과 홍콩기본법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의 중앙정부와는 구별되는 자유민주주의로 통치되고 있다.

그러나 친중파가 행정장관(
行政長官)과 입법원(立法院)의 다수를 차지하고,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정치 전반에 미치기 시작하면서, 민주화 운동과 중앙정부의 방침에 반발하며 민주와 독립을 외치는 저항이 일상화되었다

많은 홍콩인은 자기를 중국인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지인의 거센 물결에 홍콩인의 존재감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중앙정부도 속도 조절에 힘쓰는 모양새이지만 그 큰 흐름을 막기란 역부족이다

'하나의 중국'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임이 홍콩 반환 시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분단되어 있었던 시간만큼 서로의 간극도 큰 것을 인정하고, 그 만큼의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만 진정한 통일, '하나의 중국'이 될 수 있다. 홍콩 반환 시 '하나의 중국'의 전제로 '일국양제(一國兩制)', '항인치항(港人治港)'을 인정한 취지는 중화민족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모두가 인내하는 일체감으로 통일국가를 이루어 가자는 것으로 보인다

분단국가의 통일과정에서 다양한 입장에 대한 설득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 하는 것은 통일을 주도하는 측이 해야 할 역할이다. 우리의 남북통일도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똑같이 예정되어 있다. 서로 이해하고 포용할 간담상조(肝膽相照: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뜻)의
마음가짐이 통일의 출발점이다 

위 내용을 설명하는 아래 첨부자료는 원광대의 <한중관계연구원>에서 발표해 주었다.

 

 담()은 과 담낭()으로, 마음속 깊숙한 곳을 가리킨다. 《고사경림()》에 보면 “담을 상조()하니, 이런 것을 복심지우()라고 한다. 의기()가 서로 불평()을 하니 이것을 구두지교()라 한다”고 하였고, 《한서()》의 〈노온서전()〉에 “담을 피력()한다”라는 말이 있다.

 

2017.8.4일

<아판티와 함께하는 중국금융 산책>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 20년이 지났지만(170713, 한중관계연구원).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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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반환된 홍콩, 20년이 지났지만(170713, 한중관계연구원).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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